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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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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JOY TRAVELING IN THE PAJU
볼거리 즐길거리 가득한 파주여행

  • 율곡이이 유적지 자운서원
    창건되어 효종원년(1650년)에 사액되었다. 숙종 39년(1713년)에 선생의 후학인 사계 김장생(1548~1631년)과 현석 박세채(1632-1695년) 두 분을 추향하였으나, 고종 5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철폐되었다. 율곡 이이는 파주 율곡이 본가인 아버지 이원수와 강릉이 본가인 어머니 신사임당 사이에서 외가인 강릉에서 태어나 6세 때에 파주 율곡으로 와서 13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23세부터 29세까지 9번의 과거에서 9번 장원급제를 하기까지 어머님 문상기간과 금강산 수도의 4년을 제외하고는 이곳에서 학문을 닸았고 벼슬길을 마친 말년에도 이곳에 돌아와 49세로 생을 마치기까지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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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석정
    화석정은 원래 고려 말의 유학자인 길재(吉再)가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에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었는데 사후 그를 추모하여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그 후 폐허가 되었다가 율곡 이이의 5대조인 강평공(康平公) 이명신(李明晨)이 세종 25년 (1443년)에 정자를 세우고 1478년 증조부 이의석(李宜碩)이 중수하였다. 이숙함이 화석정이라 명명하였으며, 이이 때에 이르러 다시 중수된 유서 깊은 곳이다. 정자 주변에는 느티나무가 울창하고 그 아래 임진강에는 밤낮으로 배들이 오락가락 하였으며 밤에는 고기잡는 등불이 호화찬란 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임진강을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고 느티나무 몇 그루 만이 그 시절을 증명해주고 있어 쓸쓸하다. 율곡 선생은 평소 정자에 제자들과 함께 기둥과 서까래 등에 들기름을 반질반질하게 먹여두었다고 하는데, 훗날 임진왜란(선조 25년, 1592년)이 일어나 선조가 의주로 파천할 당시(4월29일 밤) 억수같은 폭포속에서 강을 건널 때 이항복이 화석정에 불을 질러 무사히 배가 강을 건넜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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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진각
    임진각유원지는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과 그 이후의 민족대립으로 인한 슬픔이 아로새겨져 있는 곳이다. 임진강지구 전적비, 미국군참전비등 각종 전적비와 1983년 미얀마 아웅산 국립묘소에 참배 중 북괴의 폭탄테러로 사망한 17명의 외교사절을 추모하는 위령탑, 1987년 김포국제공항 폭발사고 희상자 추모비가 있으며, 남북 분단 전 한반도 북쪽 끝 신의주 까지 달리던 기차가 이곳에 멈추어 전시되고 있다. 이 곳에는 망배단이 있는데 망배단은 휴전선 북쪽에 고향을 가진 실향민들이 매년 설날과 추석때 가족이 보고 싶을 때 고향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이곳에서 이북에 계신 부모, 조부모에게 배례하는 장소이다. 소식이 끊겨 생사도 불명확한 가족을 애타게 찾는 이산가족의 아픔이 서려있는 곳이다. 이곳은 분단의 아픔을 되새기며 통일을 염원하는 통일안보관광지로 매년 250만명의 내·외국인이 방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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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이리
    헤이리는 다양한 문화장르가 한 공간에서 소통하는 문화예술마을을 지향하고 있다. 1994년 부터 구상, 1997년 발족된 헤이리는 15만평에 작가, 미술인, 영화인, 건축가, 음악가 등 370여명의 예술인들이 회원으로 참여해 집과 작업실,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 등 문화예술공간을 짓고 있다. 마을 이름은 경기 파주 지역에 전해져오는 전래농요인 ‘헤이리 소리'에서 따왔다. 남녀노소 모두의 눈높이에 맞는 다양한 기획전 개최 및 어린이 대상의 미술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아트샵에서는 작가들의 소품 및 아트상품, 어린이도서도 전시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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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어마을
    영어마을은 영어권 국가 마을의 모습을 본떠 건축하여 이국적 환경속에서 문화적 체험을 통해 영어를 습득할 수 있다. 지난 2006년 4월 국내 최대 규모로 개원을 하였으며, 교육생과 교사 700명 이상이 상주하여 교육, 체험, 놀이가 결합된 시설과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 생활속에서 자연스럽게 영어체험을 할 수 있다. 공공시설과 상업시설, 각종 체험시설, 놀이 및 특화시설등 모든 시설이 주거 공간이자 체험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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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전망대
    통일전망대는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오두산에 세워졌다. 지상 5층, 지하1층의 석조건물로 지어졌으며, 1992년 9월 8일 개관되었다. 이곳은 이북지역과 직선거리 460m로 휴전선 15마일중 비무장지대폭이 가장 짧은곳이다. (일반적인 비무장지대는 휴전선을 경계로 남북 각 2km씩 4km로 설정되어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다.) 해발 140m의 높이에 자리잡은 원형전망실에서는 북한 주민의 농사짓는 모습등을 바라볼 수 있으며, 이북 주민의 생활상을 알 수 있도록 현재 이북주민들이 사용하는 의류, 교과서, 생필품 등이 정시되어 있다. 민족 분단의 실상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통일의지를 새롭게 가다듬을 수 있는 전시공간으로 통일교육의 산도장 역할을 하고 있다. 이산가족들이 추석과 설날 등 명절을 맞아 조상들을 추모하는 망배단, 그리고 지름 2m, 무게 600kg의 거대한 통일기원북 등이 설치되어 있다. 매년 100만명의 내외국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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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관장군묘
    윤관장군묘는 고려 예종(譽宗) 때 여진정벌의 공을 세운 명장 윤관(尹瓘)의 묘로 묘역전체 규모가 상당히 크고 웅장하며 봉문과 석물이 단을 이루며 자리잡고 있다. 봉분아래는 장대석 모양의 호석(護石)을 두르고 봉분뒤로 담장을 둘러 아늑한 느낌을 주고 있다. 봉문정면에 상석(床石)이 놓여있으며 왼쪽에 묘비가 서있다. 한계단 아래에 양쪽으로 망주석과 상석 전면에 사각의 장명등이 세워져있다. 장명등을 중심으로 각각 양편에 동자석, 문인석, 무인석, 석양, 석마등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묘역 아래에는 윤관장군의 영정이 봉안돼있는 여충사(麗忠祠)가 자리하고 있는데 매년 음력 3월 10일 제사를 지내고 있다. 윤관(?~1111)은 태조를 도운 삼한공신(三韓功臣) 신달(莘達)의 고손이며 검교소부소감(檢校小府少監)을 지낸 집형(執衡)의 아들이다.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동현(同玄),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고려 문종(文宗)때 문과에 급제하였고 숙종 9년(1104)에 동북면행 영병마도통(東北面行 營兵馬都統)이 되어 국경을 침범하는 여진정벌에 나섰으나 여진의 강한 기병에 패하고 임기응변으로 강화를 맺고 철수하였다. 그 후 특수부대인 별무반(別武班)을 창설 대원수(大元帥)가 되어 예종2년(1107) 부원수 오연총(吳延寵)과 함께 17만 대군을 이끌고 여진을 정벌하고 9성을 쌓아 국방을 수비케하였다. 윤관은 문무(文武)를 겸한 공신으로 예종6년(1111)에 돌아가자 1130년(인종 8) 예종의 묘정(廟廷)에 배향(配享)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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